을지문덕

을지문덕 한시

'여 수장 우중문 시', 직역하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보냈다고 전해지는 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억양법이 사용된 오언고시이다.

한글

한자

영어


신책구천문

神策究天文

Your divine plans have plumbed the heavens;

그대의 귀 같은 전략계책은 하늘의천문 이치를 다하였고

묘산궁지리

妙算窮地理

Your subtle reckoning has spanned the earth;

기묘한 계략은 땅의지리 이치를 통달했구나

전승공기고

戰勝功旣高

You win every battle, your military merit is great;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지족원운지

知足願云止

Why then not be content and stop the war?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상황

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고구려군의 철저항전 때문에 공격에 난항을 겪고 있던 수양제의 수 지휘부는 우중문 장군을 지휘관으로 삼아 병사 30만 5천 명을 뽑아서 별동대를 편성하여 평양으로 곧장 내려보냈다.

을지문덕은 이들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항복 사신을 가장하고서 수나라 진영에서 우중문을 만났다. 이미 수 양제에게 적 장수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았던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잡으려고 했지만, "대국의 장수가 어찌 항복을 타진하러 온 사신을 붙잡는다는 말이오? 대왕께 아뢰어 황제 폐하를 뵙게 하겠으니 나를 보내주시오."라는 말을 듣고, 상서우승 유사룡의 만류도 있고 해서 무사히 돌아보내고 만다. 그리고 을지문덕은 굶고 지친 수나라 군대의 상황을 샅샅이 살핀 후, 우중문에게 이 시를 보낸다.

해석

사실 이 시는 내용을 천천히 뜯어보면 정말로 우중문을 칭찬하는 게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반어법으로 '우중문을 비꼬기 위해 쓰인 시'다. 정규 교육 과정 중 한문 시간에 배우는 경우가 많아 한시 중에서는 비교적 지명도가 높지만, 이 시가 수나라 군대를 조롱하는 내용이라는 간단한 설명만 하고 넘어가는게 대부분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당시 동아시아에서 병법을 논할 때는 3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논했는데 인화, 지리, 천문(또는 천시)이 그것이다. 각각을 해석하면 여론, 좋은 땅, 시기 또는 운명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을지문덕은 이것을 뒤집어서 역순으로 천문, 지리, 인화를 논하면서 우중문이 직면한 상황을 비꼰 것이다. 구성 자체가 반어법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대의 귀신 같은 전략은 하늘의 이치천문를 다하였고



→ 당시 시점은 음력 6~7월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7~8월 즈음이었다. 즉, 한여름이었다. 삼국지나 역사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여름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심히 꺼렸다. 그 이유는 여름은 농번기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야 할 농부들을 병사로 징집하면 그해 농사는 망치는 것이었고, 장기적인 국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자폭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 문제는 제쳐 두고서라도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갑주나 병장으로 꽁꽁 무장한 병사들의 피로도가 상승하고 열사병을 유발할 수 있었으며, 당시 시점인 7~8월은 현대에도 장마와 폭염이 번갈아 오는 시기로, 대량의 폭우와 무더운 날씨는 행군을 비롯한 전략, 전술적 행동에 큰 차질을 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었다. 또한 활의 접착제로 쓰이는 아교가 습기에 약했기 때문에 궁병의 운용에도 차질을 주었다. 이성계 역시 요동 정벌을 반대하는 4불가론 중에 여름이라는 점을 두 번(두 번째, 네 번째)이나 강조했다.



사실 을지문덕의 이 천문 드립은 수군의 당시 상황뿐만이 아니라 수군의 첫 출병 시점까지 도매금으로 묶어서 깐다고 볼 수도 있는데, 수군은 1월, 즉 한겨울에 출병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의 병법서에서는 겨울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극구 만류한다. 병사를 부리기 힘든 혹한이 몰아치기 때문. 게다가 주요 싸움터인 만주 지방은 겨울에 시베리아 이상의 기록적인 기온이 가끔 나올 정도로 혹한으로 유명한 곳이다. 먼 훗날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그 후의 독일 국방군도 결국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대패했으니 을지문덕의 말대로 천시를 제대로 잘못 고른 셈이다.



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지리를 통달했구나



→ 우중문의 수군은 보급선의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진격하는 바람에 군량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병사 개개인에게 군량을 비롯한 보급품을 스스로 운반하게 하고 있었던 터라 현대의 완전군장 이상의 군장을 싸매고 행군하는 상태였다. 몇주의 식량을 짊어지고 갑주에 창까지 꼬나든, 질병을 치료할 백신도 없는 고대 군대가 변변한 냉방기구도 없이 장마철에 산과 언덕, 습지대를 지나간다면 어떤 헬게이트가 열릴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병사들은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해서 사기도 왕창 떨어져 있었다.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 이 시의 클라이맥스. 내용만 보면 "싸움에서 이긴 공적이 높다"고 칭찬하는 것이지만, 정작 전쟁 내내 우중문은 고구려를 상대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앞에서는 천문, 지리를 제대로 언급했음에도 이 파트에서는 인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통으로 생략해버렸다. 물론 공이라는 것은 결국 여론이나 지도자 등 사람의 의견으로 좌우되는 부분이므로 넓게 보면 인화에 해당하는 파트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정작 세운 공이라는 게 거의 없는 상황을 반어법으로 칭찬한 것이니 인화가 없다고 비꼰 셈이 된다.



을지문덕의 계산에 따라 의도된 승리를 거두고 있었던 수나라 입장에선 그야말로 허탈한 기분. 게다가 이걸 이 전쟁의 없는 전공을 칭찬한 게 아니라, 우중문이 그동안 대장군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쌓아야 했던 전공을 칭찬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우중문의 처지는 훨씬 더 처참해진다.

다른 방향으로는 을지문덕은 겉으로는 항복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신이었다. 그런데 그 항복을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잡아가겠다고 위협까지 해서 내쫒은 상황이라 사실상 고구려의 항복을 받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평양성을 점령해야 하는데, 이미 내호아가 이끄는 수나라 수군이 박살난 상황이고 출발할 때부터 보급품은 바닥나서 병사들이 굶어죽는 실정이라 장기간에 걸쳐 공성전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중문은 공훈을 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떠하리오

→ 간단하게 "목숨이 아까우면 알아서 후퇴하는 게 좋을 거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후

드러난 문장과는 달리, 속으로는 철저히 비꼬는 의미가 담긴 서신을 받고 분노했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던 우중문은 퇴각을 결정한다. 도발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직감했는지 우중문은 퇴각에 속도도 내지 못하고 가시돋친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미적미적 퇴각했으나 얼마 뒤 살수 강에서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고 총 병력의 99%가 사망, 도주, 나포되었다. 당연히 유사룡은 패전 이후 처형당했고, 우중문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혔다가 이듬해에 화병으로 병보석된 뒤 자택에서 6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 을지문덕 한시

    • 삼국사기에 기록

    • 억양법 사용

    • 한글, 한자, 영어

    •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전승공기고

    • 지족원운지

    • 상황: 고구려-수 전쟁

    • 해석: 우중문을 비꼬는 시

    • 천문 드립: 여름 전쟁, 겨울 출병

    • 지리 드립: 보급 부족

    • 전쟁 승리 칭찬, 인화 생략

    • 우중문 처지, 항복 불가능

    • 만족하고 후퇴 권유

    • 우중문 패배 후 감옥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