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
서동요
서동요는 신라 진평왕(579년-632년) 때 (599년 이전)에 이루어진 동요, 혹은 참요/민요
백제 30대왕 무왕 (600년-641년)이 소년 시절에 지어 아이들에게 널리 부르게 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서동요(薯童謠)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향가의 하나이다. 민간 설화가 향가로 승격된 예 중 하나이다.
줄거리와 배경 설화
백제 무왕의 이름은 장(璋). 일찍이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서라벌)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연못의 용(龍)과 정을 맺어 그를 낳았다. 아명(兒名)은 서동(薯童). 그 도량이 비상하고 항상 서여(마)를 캐어 팔아서 생계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아명을 그리 부른 것이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수도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가 도성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했다.
결국 서동은 자신이 퍼뜨린 소문대로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선화공주는 쫓겨나올 때 가져온 금을 떼어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했고, 이를 안 서동은 마를 캘 때 나온 금이 산더미만큼 있다고 하고는 왕에게 인증까지 했다. 그리하여 서동은 어찌어찌 해서 금도 얻고 인심도 얻어 백제의 왕이 되고, 결국 선화공주와 함께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설화의 전문이다. 이 때문에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와 서동 설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문 (원문) | 한글 (원문) | 양주동설 | 김완진설 |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夘乙抱遣去如 | 선화공주주은 타밀지가량치고 서동방을 야의원을포견거여 |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어두고 맛둥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알을 안고 간다. |
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夘乙抱遣去如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알을 안고 간다.
풍요
풍요(風謠)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4구체 향가 중 하나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선덕여왕때 영묘사라는 사찰의 불상을 만들 때 그 일을 도와주려고 모인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삼국유사에 기록한 일연에 의하면, 신라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 일연이 살았던 고려 후기에도 그 지방 사람들은 힘든 일 할 때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향가 중 민요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어 한국 민요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그 중에서도 노동요의 원조에 가깝다.
원문
來如來如來如 온다 온다 온다
來如哀反多羅 온다 서러움 많구나
哀反多矣徒良 서러움 많은 무리여
功德修叱如良來如 功德 닦으러 온다
제망매가 (祭亡妹歌)
8세기 경, 신라의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10구체 향가.
'위망매영재가(爲亡妹營齋歌)'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감통(感通)편에 전해지는데 월명사가 죽은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월명사가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불렀더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지전을 서쪽으로 날려 보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목은 말 그대로 죽은 누이[亡妹]를 기리는[祭] 노래[歌]란 뜻.
단연 신라 10구체 향가의 대표격인 작품이자 신라 향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문학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명작 중의 명작이다. 특히나 먼저 가버린 누이에 대한 절망감과 그에 비한 비유는 가슴저리게 하는 서정시로서의 극치를 표현한다.
원문:
生死路隱 생사로은 生死路는
此矣有阿米次肹伊遣 차의유아미차힐이견 여기에 있음에 두려워지고
吾隱去内如辭叱都 오은거내여사질도 나는 간다 라는 말도
毛如云遣去内尼叱古 모여운견거내니질고 못 다 이르고 가는가
於內秋察早隱風未 어내추찰조은풍미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차의피의부량낙시섭여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一等隱枝良出古 일등은지량출고 한 가지에 나고
去奴隱處毛冬乎丁 거노은처모동호정 가는 곳 모르는구나
阿也彌陁刹良逢乎吾 아야미타찰량봉호어 아아彌陁刹에서 만날 나
道修良待是古如 도수량대시고여 道 닦아 기다리련다
- 서동요는 신라 진평왕 시대에 이루어진 동요
- 백제 무왕이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음
- 고려 시대 일연이 삼국유사에 수록
- 서동요는 신라 향가 중 하나로 승격
- 풍요는 신라시대 대표적인 4구체 향가
- 풍요는 한국 민요의 원형으로 평가
-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는 8세기 향가
- '제망매가'는 신라 10구체 향가의 대표작
서동요는 신라 진평왕 시대에 이루어진 동요로, 백제 무왕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으며 고려 시대 일연이 삼국유사에 수록했다.
풍요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4구체 향가 중 하나로, 한국 민요의 원형으로 평가되며, 월명사가 지은 '제망매가'는 8세기 향가로 신라 10구체 향가의 대표작이다.